본문 바로가기
캐나다 역사&문화

캐나다인에 대하여

by cookier 2023. 3. 24.

  진짜 캐나다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 질문은 세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나라로 손꼽히는 이 풍족하고 예의 바른 나라의 많은 시민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캐나다의 대형 서점에 들어가서 서가를 쭉 훑어보면 이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제목의 책이 여러 권 볼 수 있는데, 대부분 분명하게 '정체성'을 부각한 제목들이 많습니다.

 

  물론 캐나다 원주민은 에스키모(Inuit)와 수십만 명에 이르는 최초의 인디언 부족(선주민)이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최초의 캐나다인은 17세기와 18세기 때 세인트로렌스 밸리에 정착한 불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왕의 백성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763년 이후 본토의 관심이 멀어지자 이들은 대서양을 건너온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웨일스 인들과 미국에서 이주한 왕당파 등의 영어권 사람들을 새로운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여 함께 동일한 캐나다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는 '캐나다인'이라는 말이 '퀘벡인(Québécois)'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퀘벡의 불어 사용자들이 그들만의 특별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어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불어권의 사람들도 이 나라의 건국 민족입니다. 퀘벡 주는 불어권 주민들이 인구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다른 주에서는 불어권 주민들이 소수 민족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매니토바 주(전체 인구의 약 5%), 뉴브런즈윅 주(약 32%), 그리고 온타리오 주(약 5%)가 그러한 지방입니다.

 

캐나다식 '문화 모자이크'

  19세기 초반부터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영국계나 아일랜드계 통의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다수 민족을 형성하고 있었고, 오랫동안 캐나다는 분명한 '영국형'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1965년 유니언잭이 그려진 국기가 단풍잎이 새겨진 국기로 바뀌면서 캐나다로 이주한 거의 모든 이민자들은 그들의 모국어로 영어를 선택하였고 영어를 북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새로운 이민자들이 이주해 왔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민족은 독일,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네덜란드 및 폴란드 인들입니다. 이보다 최근에는 아시아계와 인도 대륙 및 카리브 연안국에서도 폭발적으로 이민자들이 몰려들기도 했습니다.

 

  캐나다는 분명한 다중 문화 국가입니다. 즉 20세기 초에는 신참 이민자들이 소위 미국식 'melting pot(인종 도가니)'에 동화되지 않고 그들 모국의 많은 전통을 유지하는 인구 구성의 형식을 뜻하는 말로 '모자이크'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은 특히 우크라이나계처럼 처음부터 긴밀한 소수민 공동체로 정착한 프레리 3개 주와 독특한 '인종 전시촌'을 형성하여 수많은 언어로 공공 서비스를 행하고 있는 토론토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연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캐나다는 대내적으로 심지어 대외적으로까지 영어와 불어로 민원 업무를 행하는 공식 이중 언어 사용국입니다. 따라서 캐나다 대사관에 전화를 걸면 친근하게 '봉주르'와 '헬로'라는 인사말을 들을 수 있고, 로키 산맥의 산림 경비대는 'Parc Banff'라고 써진 배지를 달고 있을 것입니다. 주 지방 중에서도 뉴브런즈윅 주는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퀘벡 주는 영어권의 시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단일 언어 도시입니다. 불어를 사용하는 많은 퀘벡 인들에게 있어 이것은 중요한 정체성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불어의 우월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결국 자신들의 문화가 희석되어 영어 사용권의 북미인들에게 고립되어 불어 사용 민족의 고유한 문화가 사라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남쪽의 대국

  그렇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인의 고유문화는 어떨까요? 이러한 영어권의 많은 캐나다인들은 자신들이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으며, 아마 현재의 미국 문화와 연계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문화는 책과 잡지를 통해, 라디오와 TV를 통해 도처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무역에 관한 각종 협상이 타결되면서 캐나다 경제에 미국의 참여도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휴양지는 매년 수백만 명의 캐나다인들을 남쪽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겨울마다 플로리다로 들어오는 피한객들입니다. 미국의 고용 기회와 높은 구여도 구직자들을 끌어들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또한 미국식 회화 패턴은 캐나다인의 자기표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주지방의 같은 시민들보다는 국경선 바로 너머에 있는 이웃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는 캐나다인도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미국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영국과의 결속이 두터울 때 보증 수표처럼 생각된 적이 있으나 영국과의 유대관계가 약해진 때에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아직까지 호주의 예를 따르지 않고, 동전에는 영국 군주의 얼굴이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캐나다인들은 자신을 미국의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두 나라의 세계관 차이를 지적할 때는 무척 조심스러워집니다. 일찍부터 쿠바와 중국의 공산주의를 인정한 것이나, 미국이 베트남에서 곤경에 빠졌을 때 초연한 입장을 취한 것 등이 그 예입니다. 1965년과 1974년 사이에 많은 미국 청년들이 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도피하였습니다. 캐나다군은 한국 전쟁과 걸프전에 파병되었었고 수년동안 독일에 주둔했었지만, 그 외에는 UN 평화유지군으로서 해외 활동을 하게 됩니다.

 

 

  캐나다는 중재와 타협의 명수로, 또한 유엔을 지지하는 국가로 유명하여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UN에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타협 능력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캐나다인의 장점을 든다면 아마 독창적인 타협 능력일 것입니다. 1867년 연방 결성은 모든 주지방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잘 마무리한 타협의 산물이며 최근에도 캐나다는 퀘벡 주를 현상태로 보존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캐나다인은 어느 민족보다도 자신에 대해 인내하는 데 익숙한 편이며, 이러한 중용의 자세는 아래와 같은 유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Q : 캐나다 인이 길을 건너간 까닭은?
A : 가운데로 가려고.

 

 

'캐나다 역사&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캐나다하면 떠오르는 것  (0) 2023.03.23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